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새언약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일곱째날 토요일은 창조주의 기념일인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토요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하셨습니다(출 20장 8절)
그런데 오늘날 성경의 가르침대로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수 많은 교회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를 교회사를 통해 살펴봅시다.
로마 카톨릭(천주교)의 일요일 예배는 공식적으로 321년에 시작됐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일요일 예배를 지키지 않았다. 성경에 일요일 예배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요일 예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요일 예배의 근원은 기원전 539년 세워진 페르시아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인들은 원래 ‘불’을 숭배하는 민족이었다. 이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접하게 되면서 이곳의 여러 자연신들까지 숭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이후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 그리스식 발음)에 의해 신학과 우주관을 갖춘 종교로 재조직됐다. 바로 ‘조로아스터교’다. 흔히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해서 배화교(拜火敎)라고 부른다.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 초기 전파 과정에서 여러 남신과 여신 등을 믿는 고대 토착 종교와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인들은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의 신으로 꼽는 동시에, 그의 분신인 전쟁의 신이자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신’인 미트라를 열렬히 경배했다. 불에 대한 숭배가 태양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예배의식에도 잘 나타난다. 이들에게 태양과 불은 예식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신자들은 불이 타오르는 제단 앞에서 동물이나 나무 막대기 헌주 등의 제물을 태워 바친다. 이때 생기는 불꽃과 냄새로 경배를 표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조로아스터교인들은 가정에 화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화로 앞에서 제사뿐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매일 기도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상은 불이 아닌 태양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 종교를 국교로 삼았던 사산 왕조의 금속주화 뒷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일요일을 태양신을 경배하는 성일로 간주했다. 일요일은 한 주간의 첫날로, 고대 바벨로니아인들이 숭배하던 태양을 비롯해 다섯 개의 별을 따라 한 주간의 각 날들에 명칭을 붙여 사용했는데, 일요일은 ‘태양(sun)의 날’에 해당했다. 이들에게 태양의 날,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미트라에 대한 경배는 페르시아를 넘어 그리스, 로마 제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미트라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소아시아 지역의 많은 로마 군인들에게 전쟁의 신으로 숭배받았다. 1세기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글이다.
"미트라(메흐르)교를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들은 시실리해 인근에 살던 해적과 도둑떼였다. 이후에 이 해적들을 소탕한 로마 군인들이 미트라교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미트라교를 전파했다. 이들 외에도 시리아 상인들과 군인들도 이 종교를 받아들인 그룹 중에 하나이다."
1세기경 로마 군인들이 믿기 시작한 미트라교는 이후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될 정도로 그 세가 커졌다. 로마제국 전역에 미트라교의 신전인 미트라에움이 세워졌다. 특히 로마를 비롯해 누미디아, 달마티아, 브리타니아, 라인강 유역, 도나우강 유역에서 상당수 분포되었다. 급기야 미트라는 폼페이우스 황제(BC 106~48)의 동정(東征) 이후 로마제국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숭배했던 미트라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그 자리를 빼앗기는 듯 보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신으로 믿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밀라노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해주었다.
표면적으로 기독교는 미트라교와의 경쟁에서 이긴 듯 보였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그와 반대였다. 유일신 하나님만을 믿으며 성경의 말씀에 따라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것은 세속화였다.
미트라교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기독교는 잡다한 이방종교의 절기와 의식을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서였으나 나중에는 자의로 기독교를 변질시켜갔다. 가장 먼저 세속화된 건 예배일이었다. 321년 하나님의 주간절기인 일곱째 날 안식일이 사라지고 일요일 예배가 도입됐다.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예배일, 일요일 예배가 기독교로 들어온 것이다.
321년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이라고 명명했다. 결국 이방의 상징들이 없어졌을 때 그 불멸의 태양은 최후의 것이 되었다. (교회사 핸드북, 송광택 역, 생명의말씀사)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날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이기 때문이다. 주후 321년 3월 7일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어떤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을 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세례받기를 보류했으며, 미트라교의 대제사장의 칭호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절기인 안식일 대신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회사 핸드북의 기록처럼 그가 최후까지 남기를 바랬던 신은 하나님이 아닌 ‘불멸의 태양신’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아닌 미트라신을 숭배하는 일요일 예배를 교회로 끌어들여왔다. 그리고 일요일 예배 유입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절기가 아닌, 태양신 미트라와 연관된 다양한 절기와 의식들로 교회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처럼 기독교는 교묘하게 미트라교에 의해 잠식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