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가 19세기 후반에 발표한 단편 동화 <엄마 찾아 삼만 리>는 세계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는 아홉 살 소년 마르코가 멀리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남미의 아르헨티나까지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여정을 떠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되어 보는 이들의 눈물을 쏙 뽑았다.
케케묵은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지금 보아도 감동적인 것은 시대를 초월한 공감 때문이다. 엄마가 필요한 사람은 마르코뿐만이 아니다. 엄마에게서 태어난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고향, 엄마를 찾는다.
엄마의 사랑을 찾아
어릴 적, 엄마에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두운 유년의 기억을 한 사람이 그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평생을 깊은 외로움 속에서 살다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다.
반면 트라우마(과거에 받은 충격이 현재까지 미치는 정신적 외상)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들은 상처 치유에 적극적이다. 심리 치료를 받기도 하고, 다양한 사회 활동과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도 한다. 과거로 돌아가 지난 시간을 바꿔놓을 수는 없으니 못 다 받은 엄마의 사랑을 대체할 만한 치유책을 현실에서 찾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쓴다.
스스로 해결 능력이 없는 격리 원숭이에게는 치료자 원숭이가 투입됐다. 원숭이는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나면 상대의 기분을 살필 줄 알게 된다고 한다. 이 생후 3개월짜리 원숭이를 격리 원숭이의 우리에 넣은 것이다.
치료자 원숭이가 접근하자 격리 원숭이는 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 상대의 불안감을 눈치 챈 치료자 원숭이는 격리 원숭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털을 손질해주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고 나서 치료자 원숭이를 대하는 격리 원숭이의 태도는 달라졌다. 서서히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싶더니 놀면서 털 손질도 함께했다. 격리 원숭이는 머지않아 정상적인 원숭이와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격리 원숭이에게 편안한 일상을 안겨준 것은 최고의 먹이나 환경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받지 못했던 관심과 애정의 충족이었다. 대상이 어미가 아니었다 해도 격리 원숭이는 어미를 통해 해결하지 못했던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자 행동이 바뀌었다.
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대입해보아도 어색하지 않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없어 보이지만 실상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갈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이 기다리는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
영국문화협회가 세계 102개국, 4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Mother(어머니)’였다. 설문 결과가 단지 단어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아름답고 따뜻한 ‘엄마’에 대한 느낌은 동서양을 막론한 공통된 정서다.
갈 4장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어머니와 자녀 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천륜은 이 땅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어쩌다 그 품을 떠나와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처지지만 우리는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께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각별한 사랑을 받던 천사들이었다
(잠 8장 22~26절, 욥 38장 4, 7절).
차고 넘치는 천상의 사랑을 받다 내려온 존재들에게, 진실한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살이는 고달플 수밖에 없다. 온갖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면서도 고독과 공허함을 하소연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높아져만 가는 이유다.
요즘 사방에서 부는 힐링 열풍은 그 영혼의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어떤 힐링도 일시적인 위안은 될지언정 근본적인 욕구 충족은 될 수 없다. 영혼의 공허함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것은 내 영혼을 낳아주신 어머니의 사랑이다.
세상에서 지친 우리 영혼은 오랫동안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해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영혼들을 곁에서 눈동자처럼 보살피시며 무한한 은혜를 베푸시던 하늘 어머니의 사랑을 영혼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어머니가 가진 기억은 매우 뚜렷하다.
사 49장 14~16절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는 자녀들을 한시도 잊으신 적이 없다. 생기로 호흡을 지으시던 순간부터 함께했던 아들딸들이 죄를 짓고 하늘 본향을 떠나, 인생의 수고와 슬픔 속에서 눈물짓고 있는 것도 다 아신다.
그 눈물을 닦아주시기 위해 하늘 어머니께서 친히 이 땅까지 오셨다.
사 66장 13절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오래도록 기다려온 위로와 사랑을 받고 ‘엄마 찾아 삼만 리’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외롭고 지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힘겨워하는 영혼들이 많다.
누구보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면서도
우리보다 더 흐릿한 기억 때문에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리자. 당신이 애타게 찾고 있는 영원한 안식처, 하늘 어머니께서 오셨다고. 그리고 전해보자.
우리가 어머니께 받은 아름다운 천상의 사랑을